초청작

Invitational Work

Ro Caminal

Kawita Vatanajyankur

Shailesh B.R

Tsering Motup Siddho

순수미술과 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두 분야의 무질서를 혼합하는 과정을 통하여 세계를 재현하는 예술적 시도를 해왔다. TIVA 16, KINO Palais, 라고스 비엔날레, Intermediaciones, 샤르자 영화제를 비롯, 다양한 축제 및 전시에서 폭넓게 활동해오고 있다.

With an educational tour in the field of Fine Arts and Anthropology, he develops his artistic practice exploring the world of re-presentation, hybridizing indiscipline between the two fields.

She has exhibited widely in few different festivals and exhibitions as TIVA 16, Kino Palais, Lagos Biennale, Itermediaciones or Sharjah Film Platform.

Ro Caminal, <Moi, un, nolr, Reloaded>, 65min 35sec, 2015

[크기변환]01_Moi, un, nolr, Reloaded, 65min
[크기변환]02_Moi, un, nolr, Reloaded, 65min

<Moi, un Noir. Reloaded>는 쟝 루슈에 대한 찬사이자, 1957년 프랑스 인류학자가 제작한 영화 <나, 흑인(I, a Negro)>를 현대화하고 재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이 충분한 거리를 두고 동양을 향한 열렬한 호기심이 어린 서구의 시선을 충족하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은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하며 특히 물질성에 관하여 이질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했다.

작품은 한 번에 한 가지가 아닌 동시에 두 가지 시선을 통하여 전개하려 노력한다. 서구의 관객들에게는 동양인의 삶이 그들의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이 문화적 차이를 불평등의 기제로 합법화하는 권력의 지위를 작용시키고 있는지 깊게 고찰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하는데, 이러한 모든 작용은 서구 관객들이 관음을 통하여 얻는 행복을 결렬시킨다.

비서구권 관객들은 식민지화를 유발한 자본주의가 내면의 지배와 착취라는 본질의 역동성을 유지한 채 외면만 바꾸며 지속적으로 변이하며 도생하고 있는 현실을 통해 식민지화가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임을 인식하게 한다. 우리는 서구가 경제 성장에 있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이에 대한 정서적 심리적 비용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가정 하에, 작품은 주인공의 일상 속으로, 그리고 동시대 유럽에서 흑인, 무슬림, 이민자라는 주체로서의 그들의 경험 속으로 파고든다.

Moi, un Noir. Reloaded, by Ro Caminal, is a tribute to Jean Rouch, and provides an update / re-interpretation of Moi, un Noir, the film the French anthropologist made in 1957.

While the original film was directed to satisfy eager curiosity of the western gaze for knowledge about otherness from the safe distance of a film, Reloaded tries to minimize cultural differences and avoid the exotic, particularly in reference to corporeality.

The film seeks to work through two gazes simultaneously and not meet either of them. To the Western viewer, the pleasure of voyeuristic security is denied, showing lives that do not differ from their own, thus confronting them to consider whether as citizens they exercise that power position that legitimizes cultural difference as a producer of inequalities.

Non-Western viewers are urged to consider colonization as a historical period that is not closed, which like the capitalism that generated it is undergoing continuous mutations, allowing it to change its surface while maintaining the dynamics of domination and exploitation imply in it. We invite them to consider that, while it is true that the West offers the possibility of economic improvement, there is a high emotional and psychological cost for it. Under these assumptions, the film plunges into the daily lives of the main characters, into their thoughts and reflections on their experiences as black, Muslim and immigrant subjects in contemporary Europe.

[크기변환]02_Unfolding Penelope, 20min 34sec
[크기변환]01_Unfolding Penelope, 20min 34sec

Ro Caminal, <Unfolding Penelope>, 20min 34sec, 2017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상은 세네갈 이민자의 배우자와 오디세이의 페넬로페의 일탈적 평행론을 시사한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린다는 평행론. 여성이 페넬로페의 공간을 차지함과 동시에 이를 전복시키려 하는 일탈성. 오디세이의 페넬로페는 그녀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발설하지 않으며 집이라는 공간에 강등된 종속적인 인물인데, <Unfolding Penelope> 작품 속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이 바로 이러한 여성들이다. 그들은 사회적 맥락이 강요하는 침묵을 깨는 주체이자 객체다. 이는 여성,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이중적 고정관념을 깨는 과정을 통하여 이들이 목소리를 내며 관중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함으로써, 마치 오디세이가 이들을 부차적인 공간으로 강등시킨 것처럼, 이들을 에워싸는 사회 압력을 타파하기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그들이 지닌 수단들을 사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영상은 이민을 단지 그들 주위의 지형을 바꾸는 무언가로 여기며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에서 만들어내는 효과와 변화에 침묵하는 유럽 중심의 시각을 타파한다. 또한 영상은 여백에서 침묵하는 것들을 포함한 모든 내레이션이 이들의 본성 그자체가 아닌 사회적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침묵됨을 강조하면서 민족성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실험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영상은 증언의 전통적인 형상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상은 연구와 작업과정에서 생겨난 연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Departing from the title, the video establishes a divergent parallelism between the spouses of the Senegalese immigrants and Odyssey’s’ Penelope. Parallelism since all of them remain prolonged periods of time waiting for the return home of their husbands. Divergence since these women not only occupy the place of Penelope, but subvert it. Odyssey’s Penelope is a subordinate character, who does not speak for herself and is relegated to the home space, in Unfolding Penelope, the main characters in the story are these women. They are the object and the subject, breaking the silence that the social context imposes. Thus, taking the power of enunciation, and question the spectator by breaking a double stereotype: being a woman and being an African one, to tell us how they use their agency to negotiate with the social pressure that surrounds them, that, like the 'Odyssey would like to relegate them to a second plane.

The video breaks the Eurocentric gaze, which tends to look at immigration just as something that changes our nearby landscape, but tends to silence the effects and changes that it causes in the emigrant’s homeland. The Video questions the traditional figure of the testimony, experimenting ways in which to show audiovisual ethnography, emphasizing that all narration, also like everything that is silenced in the margins, is not by its very nature, it is built or silenced by the social gaze. For this reason, the video maintains the theatrical structure that arose from the research and the work process.

Vatanejyankur는 호주, 아시아, 미국, 유럽 전역에서 널리 전시해왔다. 그녀의 작품은 태국 국립 컬렉션 전시 및 싱가포르 미술관, 더니든 국립 예술 갤러리(더니드 국립미술관), 마이암 현대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호주, 뉴질랜드, 아시아, 유럽, 미국 등에서 대학 전시 및 개인 전시를 통해 공개되기도 하였다. 현재 방콕 노바 현대미술관 와 호주 안티도트 단체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Kawita Vatanajyankur, <The Spinning Wheel>, 5min 36sec, 2018

Vatanajyankur has exhibited widely across Australia, as well as Asia, USA and Europe. Vatanajyankur’s work is held at the National Collection of Thailand and in Museum collections including Singapore Art Museum, Dunedin Public Art Gallery (Dunedin Art Museum), Maiiam Contemporary Art Museum, as well as university collections and private collections in Australia, New Zealand, Asia, Europe and America. She is currently represented by Nova Contemporary, Bangkok and Antidote Organisation, Australia.

The Spinning Wheel, 5min 36sec, 2018.png

<The Spinning Wheel>은 2018년 작업물인 ‘Performing Textile Series’의 일부로, 여성이 수행하는 수작업 과정의 육체적 표현을 포착한다. 그녀의 비디오 시리지은 여성 신체의 물리적 특성과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사한다. 또한 컬렉션 작품으로서의 ‘Performing Textile’은 문화정체성, 페미니즘, 노동, 소비와 삶의 경험의 장소를 둘러싼 질문들을 유발하는데 이들은 일상의 색을 초월하는 극사실주의적 렌즈와 물리대 물질 구성의 강도를 통해 분류된다.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작가의 신체는 물질적 도구로서 경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이는 그녀가 심리적 육체적 변형을 겪게 한다. 운동의 소모적인 반복은 노동의 끝없는 총체성과 인간의 소비 이면의 물질주의를 상징한다.

비디오아티스트로서 최초로, Kawita Vatanajyankur의 작품에서 작가 자신의 신체는 병치되지 않으며 직물 제조에서 사용되는 기계나 과정 자체로서 표현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신체성과 수행성의 교차점에서 발현되는 상당한 부조화를 제시한다. 시적이면서 동시에 야만적인 ‘Performing Textiles’은 여성의 가치와 페미니즘 예술의 역사적 궤적에 성공적으로 보편성과 동시성을 유도함으로써 여성의 형태에 관한 문화적 중요성을 시사한다.

The Spinning Wheel is a part of Performing Textiles Series which is a 2018 body of work, capturing the physical manifestation of manual labour processes undertaken by women. Her suite of videos offers a vignette into the physicality and vulnerability of the feminine body. As a collection, Performing Textiles provokes questions surrounding the place of cultural identity, feminism, labour, consumption and lived experiences—classified through a lens of hyper-coloured realism and the intensity of physical versus material composition.

As the works progress, her body struggles to compete as the material tool, and thus her form undergoes both psychological and physical metamorphosis. The draining repetition of movement is symbolic of labour’s endless totality and the materialism behind human consumption.

As a video artist first and foremost, Kawita Vatanajyankur’s work presents her body, not alongside, but as the machines and processes used within the manufacturing of textiles. Subsequently, this presents a striking incongruence that lives at the intersection between physicality and performativity. Poetic and savage, Performing Textiles explores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the female form—successfully bringing universality and contemporaneity to the value of women and their historical trajectory in feminist art.

인도 남부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고대 힌두 지식 체계 안에서(산스크리트어로) 교육을 받은 후 전문 사제(Brahmin pandi)의 길을 걷다, 결국 (순수미술 전공으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 한 후,) 예술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Tarka sastra는 지식의 근원과 토론을 통해 이에 대한 검증을 분석하는 철학인데, 나의 철학적 실천은 더 나아가 그러한 토론의 정치를 해독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철학을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나는 나의 예술적인 실천을 물질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의례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해석하도록 하는 성가의 한 형태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대상과 기계, 나아가 이들의 민감성, 의미, 실천성, 개념 그리고 은유들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물질들의 기능을 변경함으로써 이들을 변화시킴과 동시에 그러한 물질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중요성을 비평하기 위한 목적으로 풍자를 주입하려 한다.

Shailesh B.R , <Tail of a Dog-(Shwapuchchha)>, 17min 25sec, 2020

Born and raised in a small village in South India, my journey until now has spanned an education in the ancient Hindu knowledge system (in Sanskrit), becoming a professional priest (Brahmin Pandit), and eventually choosing art as a way of life (and accomplishing a Bachelor followed by a Masters in Fine Arts). Tarka Shastra is a philosophy which

analyses the source of knowledge and its verification through the art of debate - my philosophical practice is to go further and decode the very politics of such a debate. With philosophy as a starting point, I consider my artistic practice as a form of chanting that allows me to ritualistically decipher meaning through a continuous engagement with materials. I

react to objects or machines that I work with, but also their sensibility, meaning, practicality, concept or metaphors. I thereby repurpose objects to alter their function and inject them with satire to criticize its political, social or cultural significance.

[크기변환]Tail of A Dog,17min 25sec, (Loop),

개의 꼬리는 결코 곧게 펴질 수 없다. 카스트제도는 출생을 기반으로 육체와 정신을 여생에 결박시킨다. 일부는 신성한 끈으로, 또 일부는 일생동안 겪을 차별의 올가미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의식들은 이들의 매듭을 단단하게 하고 영적 유산의 루프를 유지시킨다. 그러나 육체가 짊어진 의식차원의 단조로움이 초래하는 이 지루한 부담감이 인간의 정신에 유리하게 저울을 기울일 것인가?

The tail of a dog can never be straightened. The caste system binds both the body and spirit based on birth through the rest of life - for some with the sacred cord, and some with the noose of lifelong discrimination. Everyday rituals strengthen these knots and maintain the loop of spiritual inheritance. But will the tiresome burden of ritualistic monotony carried by the body, tip the scales in favor of the human spirit?

Tsering Motup siddho는 레(Leh)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다원예술가다. 라다크에서 태어나 마이소르에서 자랐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이에 따라 정체성을 포함한 근본적인 문제와 의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정체성, 고정관념, 기억, 가정 그리고 이민과 같이 인도 주류의 정체성 속에서 “다른” 인종이라고 간주되어온 그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 작가 자신을 향한 질문들의 사회문화적 구조성에 관한 것이다. 신체를 활용한 최근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시각예술을 활용하여 오늘날의 사회문화적 정치의 위치를 고찰하고 주류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담론들을 탐구하고 토론한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내 작품에서 이러한 모든 미묘함을 탐구하고자 본토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온 것을 유감이라 생각한다.’

Tsering Motup Siddho is a multidisciplinary artist who lives and practices in Leh. Motup was born and raised in Ladakh and Mysore. He uses his body to present himself and thereby talk about identity and other fundamental issues and queries regarding the socio-cultural constitution of selfhood vis-à-vis questions of identity, stereotype, memory, home and migration which spring from his own unique identity of the racial “Other” in relation to main stream Indian identities. Through his more recent body of works, He uses his visual art to reflect on the position of the socio-cultural politics of the present, to explore and discuss the varied discourses in the mainstream. Motup says ‘I wistfully returned home after my education from the mainland to find all these nuances in my work’.

Tsering Motup Siddho, <Address Addressed>, 4hour 23min 45sec, 2019

[크기변환]Still cut1.jpg

나는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속이 텅 빈 바위들에 특히 관심이 있었기에 Melong Thang의 바위가 계속해서 떠올랐으며 결국 공연 장소로 택하게 되었다. 나는 이 바위들이 인간과 자연 사이 경계라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근무시간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 곳에서 공연을 했다. 나는 당기고, 들어올리고, 때리고, 눕히고, 긁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하며 총 5시간 동안 바위와 교감하며 공연하였다. 바위의 물리성을 구현하는 공연적 행위는 물리적 저항이라는 일상적 행위에 가담하는 것을 의미했다.

작품의 제목은 ‘거울-Mirror’이라는 장소의 명칭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Address’와 ‘Addressed’는 공연이 이루어진 장소의 주소를 반사하여 보여주는 ‘거울-Mirror’ 이미지의 개념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목은 공학적인 연관성과 결부한 영토로서 장소의 정체성과 상황성을 확장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의미를 취한 장소들의 명칭 조작을 시사한다.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은 장소의 특수성을 반영한 하루 동안의 공연인데, 이는 종교나 정치의 개입을 통하여 호평을 받은 장소에 의해 알려지거나 발현된다. 특히 이러한 것들은 공연적 행위나 신화로 인해 인식되고 누군가에 의해 점유됨으로써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장소들은 생명이 없던 존재에게 종교적 함축과 연결을 통해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전설이나 상징물로 격상시키는 곳들이다.

(종교/군대)조직이 이러한 상징적 물체를 만들어내는데 관여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느리지만 외연적으로 확장해나감에 따라, 정체불명의 땅은 비로소 정체성을 가지게 되며 특정 조직의 숭배의 장소로 간주된다. 본 작품은 문화적 패권주의자들의, 특히 강제적이며 구조화된 대화의 과정을 통해 특정 조직이나 국가 기구에 의해 땅이 점유되는 상황 속에서의, 열린 대화일 것이다.

[크기변환]Still cut 2.jpg

This rock of Melong Thang became a recurring thought for me and then a site for a performance because I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hollow rocks which are shaped like animal and human forms. I think of these rocks as a threshold between humans and nature. Recently I performed there between 11am to 5pm, which is usually my office time. I performed for a total of 5 hours, engaging with the rocks through mundane actions like pushing, pulling, lifting, hitting, laying, scratching and so on. The performative act of embodying the physicality of the rocks meant engaging in the mundane act of physical resistance.

The title of this work is inspired from the name of the landscape ‘Mirror’ so the 'Address' and 'Addressed' hold the idea of a mirror image which also reflect upon the address of the performance's site. The title of the work also addresses the manipulation of names of the landscapes with religious names to become an identity and contextual to expand a territory with engineered relevance.

The durational performance is a site-specific day long performance informed and motivated by acclaimed sites that have emerged through religious or political interventions. Especially those that have come into being by being identified and occupied due to a performative act or myth. Those sites where inanimate objects are given life through strong religious connotations and threads making them into legends or symbols.

When an institution (religious/military) situates itself in the manufacturing of symbolic objects and slowly but surgically expand over a long period, an unidentified land is identified or addressed in favor of the certain institution becoming a place of worship. This work is an open conversation of cultural hegemonies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occupying land by an institution or state machinery through imposed and structured pro-narratives.